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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역사 - 조선시대

돌맹맹이 2025. 6. 2. 06:54

조선 태조는 1392년 개경에서 조선을 건국하고, 1394년 10월 남경으로 천도했다.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데에는 풍수사상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나, 한양의 도시계획 자체는 유교 이념에 바탕을 둔 도성제에 따라 건설되었다. 이듬해 1395년에는 한성부로 개칭하고 5부(部) 52방(坊)의 행정 구역을 확정했다. 한성부의 지리적 범위는 사대문 안 도성과 도성 밖 10리(약 4 km)까지의 성저십리(城底十里)로 구성되었다. 1398년 숭례문을 완공하였고, 1404년 경복궁을 준공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조선 선조는 천도를 결정하고 의주로 피난하였다. 1592년 5월 일본군에게 점령된 한양은 이어진 혼란 속에서 경복궁, 창덕궁 등 주요 궁궐이 화재로 소실되는 일을 겪었다. 이후 1637년에도 병자호란 등 전란을 거치며, 도시의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후에 서서히 재건되었다. 구한말 시기 인천, 부산 등의 개항지와 더불어 한성에도 근대적인 기반시설의 도입이 이뤄졌다. 1887년 경복궁 건청궁에 전기를 처음으로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1899년 서대문~청량리 단선전차를 처음 개통하였고, 1900년 한강 가교가 준공되었다. 1902년에는 한성전화소가 서울시내전화교환업무를 시작하였다. 1896년 환구단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는 정부와 함께 기존 법궁인 경복궁과 종각을 중심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경운궁을 중심으로 공간구조의 개편을 꾀하는 '한성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였다. 1895년부터 1903년까지 실시된 이 사업은 기존의 좁은 도로를 확장 정비하여 원활한 교통로 확보와 위생 개선을 동시에 꾀하였으며, 근대국가의 수도로 거듭나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